사도 15,1-6 요한 15,1-8
모두를 모아들이고 성장시키는 성령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한다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과거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지혜와 가르침들이 있다. 반면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비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빠지게 될 위험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나 사람들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민감하게 포착하지도 못하면서 살아가다가 문득 놀라는 경우들도 있다. 마치 매일 보면서 지내던 아이들의 성장을 오랜 만에 만난 사람이 더욱 빨리 발견하듯이, 꾸준히 자신의 일을 준비하던 사람의 기술이나 능력을 자신보다 타인이 먼저 발견하듯이.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결코 붙었다 떨어졌다하는 시행착오를 묵인하지 않는다. 물론 포도나무는 접붙이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기 전에 다시 주님을 우리 안에 간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영적인 접붙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초기 교회의 모습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는 다소의 차이와 공통점들이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방 민족들의 개종으로 인한 신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텃새 아닌 텃새를 주장하는 경우가 발생하였으며,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곧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는 많은 민족들과의 첫 만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할례나 모세의 율법이 중심이 되었던 과거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충실하게 따름으로써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딜레마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성령의 깨우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깨닫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여전히 예수님의 가르침이 참되다는 것을 간직하고 있으며, 성령의 보호를 받아 믿음의 공동체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시대에는 다른 문화와 관습을 갖고 있으며, 많은 방법과 민족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회이며, 교회는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분명한 규율 속에서도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서 증명된다. 즉 다양성 안에서도 교회의 일관된 가르침과 준수해야 할 법규나 행동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알려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복음은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전달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성령께 보호를 청하며 이끌어 주십사고 청하는 자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양함 속에서 일치를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체험할 것이다. 초기 교회의 성장에서 놀랄만한 부분은 바로 이 성령의 작용이었음을 깨닫고 주님의 약속에 의탁하는 겸손하면서도 강인한 하루를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