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2,14.36-41 1베드 2,20-25 요한 10,1-10
세상의 소리 가운데에서 주님의 소리를 듣고, 기도하며, 인내하며 동참하기
내가 사제로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된 것도 아니다. 교회가 채워준다는 표현처럼 우리가 정성을 다해서 복음의 뜻을 살아간다면 부족함 속에서도 충만한 은총을 체험한다는 표현도 있다. 또한 지금은 미약하고 부족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되고 완성되는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한정된 모습의 부르심이 아닌 삶의 구석구석에서 고백되어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과 고백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 오늘의 핵심이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과 비교할 때, 적은 비유들을 갖고 있지만 예수님 스스로 당신이 누구시라고 알려주는 내용들은 갖고 있다. 일상의 내용들을 이용하여 비유로 설명하신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비유로 말씀해주신다. 겨자씨의 비유나, 값진 진주의 비유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였다면, 당신 스스로에 대한 진술은 아버지와의 관계와 예수님 스스로의 진정한 정체성과 우리들과의 관계성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기 선포는 구약에서 모세에게 불붙은 떨기나무 속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말씀해주셨던 것과 연결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군중들 속에서 당신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나는 문이다.” 이것은 신앙의 참된 뜻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는 것으로써, 착한 목자와 부주의한 목자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양들이 그 목소리를 듣고 따라갈지 도망갈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다. 즉 바리사이들이 그들의 참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도둑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주시면서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참된 돌봄과 하느님께 올바른 인도를 할 것을 말씀해 주신다.
물론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로 말씀하지만 지금은 양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문은 세상의 구원을 위한 문이라고 말씀해주신다. “누구든지 나를 통해서 들어가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부주의한 목자는 양들을 죽이고 훔치며 멸망시키지만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더 얻게 하시려고 오셨다고 말씀해주신다. 이것은 부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믿음의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영원한 삶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삶은 지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다. 오순절 이후 베드로 사도는 성령으로 가득차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충만한 삶의 근원이 되신다고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다. 우리의 죄를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주셨다고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착한 목자이신 분께서 본보기로 남겨주신 것,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이라는 것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누리게 되는 선물은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뜻임을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회개하여 구원되기를 바랐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열절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또한 세상의 온갖 잡음으로부터 고요하면서도 강하게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다시 계획을 세워보자. 주님의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내가 어떻게 응답을 해야 할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 주간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