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부활 제4주간 월요일(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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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사도 11,1-18 요한 10,11-18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목자로서의 예수님

       

      특권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들만이 누릴 수밖에 없는 어떤 한계를 인정하는가? 아니면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게 되는가? 만약 그 내용에 대한 의무까지도 알게 된다면 그래도 똑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과연 우리가 생활하면서 경험하거나 깨닫게 되는 모습들은 총체적인가 아니면 단편적이거나 왜곡될 수 있는 것인가? 무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만큼 정확하고 중요한 사실을 전체적으로 알고 있는지를 생각해본 것 뿐이다.

      조금은 민감한 내용일 수 있지만 우리 본당의 분위기나 신자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작용으로 이루어진 일인가? 아마도 그 대답은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된 이유는 성령의 강력한 작용으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방민족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분께 다가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이방 민족들과 식사를 나누는 베드로를 비난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방 민족들 가운데 신앙인이 된 이들을 충실하게 교회의 공동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베드로는 교회 발전에 이바지한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환시와 하늘로부터 들려온 목소리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구원은 유다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위해서 온 것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각자 자신에게 물어보았으면 한다.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답을 얻었으면 한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착한 목자와 삯꾼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데 비해, 삯꾼은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착한 목자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교세를 확장하거나 특별한 권익을 누리는 것이 아닌 온전히 아버지를 알게 해주시려는 목자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으로 사도행전에서 문제가 되었던 이방민족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과 방법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어느 한 민족에 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위해 오신 구세주라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신다는 표현으로 집중해보자.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행위가 아니다. 사랑의 최고의 행위로써 신중하고 자유롭게 내려놓으신다는 말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모범적 모델이 된다. 즉 우리의 삶 이 그리스도의 삶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주님께 내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사랑하며 관대한 방법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착한 목자의 모습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며, 아버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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