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3,13-25 요한 13,16-20
성령께 나를 열어드리기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게 되었다면 지금의 내 삶에 필요한 열쇠 하나를 얻게 된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전해주게 끔 설계되어졌다. 따라서 나 자신에게 갇혀서 살기보다는 주위에서 준비된 지혜와 선을 도움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묵상해본다. 그런데 이렇게 도움을 받으려면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겸손 속에서 봉사와 일치와 사랑의 삶이 자리하게 된다.
성령의 인도로 파견된 사도들은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혈안이 될 법도 한데, 현지인들 속에서 그들의 요구를 경청하면서 그들이 청하는 순간에 성령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바오로에게 격려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자 그는 비로소 침묵을 깨고 구약에서부터 약속된 하느님의 약속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선포하게 되었다. 이것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뵙고 눈이 멀어 땅에 엎드린 바오로 사도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열매로 자라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때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 자신을 열어 놓는 삶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자신을 높이기보다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기준을 당신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로 설명해 주신다. 그리고 이렇듯 낮은 사람의 모습이라도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파견한 주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을 주님께 열어드린다고 표현한다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까? 그것은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증명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주님께 열린 사람, 성령께 개방된 사람의 삶의 모습이 이웃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천국의 문 앞에서 베드로 사도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면 어떻게 그 답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오늘 깨닫게 된다. 얼마나 많이 묵주기도를 바쳤는지, 어떤 선행을 했는지, 고백 성사를 자주 했는지, 피정이나 매일 미사에 빠지지 않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응답하면서 살았는지, 곧 성령께 열려 있고, 그분을 받아들였는지가 해답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과 대표들이 바오로 사도에게 설교의 말씀을 요청했던 근본에도 받아들임과 초대라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 때 바오로 사도를 통한 구원의 작용이 이루어진다. 마치 우리가 주님의 성령께 우리를 맡기고 그분께서 우리를 주관하시도록 내어드릴 때 하느님의 놀라운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령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가 그분께 인내로써 응답하며 받아들이고 따라나설 때 이 모든 일들은 이루어진다. 아울러 여전히 바오로 사도의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 지도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열려있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나타나는 안티오키아의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도 주님을 고백하며 따르는 사람으로서 어떤 기도와 경청 그리고 받아들임과 개방 그리고 열려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