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8,26-40 요한 6,44-51
자성을 띈 우리와 그리스도
어릴 때 장난감 가운데 자석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놀이가 있었다. 그리고 자석에 못이나 클립을 오랫동안 붙여 두면 그 자체가 자성을 지니게 되는 놀라운 체험도 느꼈다. 이것은 자석의 현존 안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마술처럼 보였다. 그런가하면 같은 극끼리는 밀쳐내고 다른 극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인간의 관계 속에서도 이른 현상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신비로운 매력과 끌림과 연결 관계를 고백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에서 몸에 벤 삶의 자국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어떤 습관과 생각과 지향을 두고 살아가는가? 사실 이런 것들을 묵상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시련을 겪은 다음에 깨닫게 되는 가르침을 경우가 많다. 외딴길에서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인하여 주님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를 만나게 된다. 우리의 만남 가운데에서도 필연과 우연을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백하게 되는데, 주님과의 만남이 그럴 것이다.
복음에서 생명의 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 자신의 선포를 만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자연스러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첫째는 음식에 대한 굶주림이며,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대한 굶주림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특별하게 고안해 내신 것이 바로 육체적인 배고픔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먹을 무엇인가를 찾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만족하는 존재가 아닐까? 결국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정신이 영적인 굶주림을 주셔서, 우리가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배고픔과 그분으로 채워지는 만족을 준비하신 것이 아닐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표현해주시면서 우리를 음식과 하느님께로 인도하시고 묶어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신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 깊이 궁금증을 느끼며, 그분을 찾아나서는 에티오피아의 내시를 통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더욱 하느님께 다가가는 모습을 되새겨 본다. 더 나아가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며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겠다는 모습으로 세례를 청하는 그를 바라보게 된다. 과연 나는 주님을 알아 나가면서 기쁘게 세례를 청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를 되돌아본다. 주님께 대한 굶주림과 그분으로 채워진 만족을 고백하고 있는가? 주님의 성령께 내 마음을 온전히 내어 드려 부활의 기쁨을 그리스도와 나누고 있는가? 우리 안에 주님의 자성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며,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주님의 식탁으로 나아오면서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고, 그분께 대한 굶주림을 채우며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