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부활 제2주간 목요일(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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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사도 5,27-33 요한 3,31-36

       

      모든 것을 바꿔놓은 부활절 아침

       

      속보나 특보를 접할 때 우리의 모습은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911사태나 태풍 카타리나, 그리고 일본 후쿠시마의 쓰나미와 원전 누출사건 등등. 이렇듯 큰 충격의 사건 가운데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두고 나타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 잡게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담대해지고 기적을 행하게 되었는지를 통하여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큰 변화와 충격을 목격하게 된다.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모습이 된다. 흔히 돈과 권력 앞에서는 정의도 빛을 잃는다는 것을 세상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드라마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라고 치부해도 좋겠지만 실제로 힘 앞에서는 제한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법정에 끌려가서 자신들의 소신을, 그것도 금지되어 있는 사항에 대하여 담대하게 이야기하는 사도들을 만나게 된다.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도로 주행 중 경찰의 경광등에 불이 들어오면 누구도 자신을 변호하거나 반론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물론 그것이 언어적, 문화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오늘 사도들이 최고 의회 앞에서 선포한 증언과 그들을 보증해주는 성령의 증언에 대한 확신은 놀라운 사건이다. 더욱이 사도들을 죽이려고까지 몰아간 증언의 내용은 빛과 진리 속에서 조명된 자신들의 과오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놀랍고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 우리의 모든 믿음을 두고 있다면 그 자체로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가? 혹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아직도 남아 있는 고통과 희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나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면서 주님께 나아가기에 이런 의문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생각과 가르침에 대한 의미가 변화되었다는 것으로 부활의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 자신의 모습이 바뀐 것도 있겠지만 그들 안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변화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신 분이셨고, 그분께서는 조상들로부터 선택된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한 약속에 충만한 결정체였으며, 아버지와 함께 공동체 안에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신 분이셨다. 그러기에 부활절 아침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사실, 곧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것이 모두 참되며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이런 부활의 모습이 우리가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부활에 집중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변화의 아침을 맞이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믿는 이들의 마음과 영혼 속에 그려주신 영원한 생명을 볼 수 있는 하루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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