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라는 이름의 지팡이
사사로운 얘기부터 한마디 하자면, 오래 전부터 몸을 움직일 때는 늘 묵주를 지닌다.
묵주를 항시 차 열쇠 두는 곳에 놓는다. 어디를 가건, 운전을 하건 버스나 지하철을 타건 묵주를 쥐는 것이 단단히 버릇 들어 있다.
‘4’와 ‘40’이라는 수를 좋아하는 탓에 오래 전부터 묵주기도를 하루 40단으로 설정해놓고 있는데,
대개는 훨씬 더 많이 한다. 매일 오후에 걷기운동을 하는 덕이다.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에 의한 ‘성인병 백화점’ 신세라서 매일의 걷기운동은 필수 사항이 되었다. 대개 두 시간 정도를 걷는다. 한 시간을 걸으면 시오리를 걸으니 왕복 30리(12Km)를 걷는 셈이다. 또 한 시간에 묵주기도 4꿰미를 하니 왕복 40단을 하게 된다.
내가 하루 두 시간을 걸을 수 있는 건 묵주기도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묵주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지루하고 힘들어서 두 시간이나 걷기는 어려울 터이다. 또 묵주기도를 하지 않고 그냥 걷기만 한다면
‘무미건조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하며 걷기운동을 하는 것은 그대로 일석이조가 된다. 여기에다 여러 가지 좋은 생각들을 얻을 수도 있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일석삼조가 되는 셈이다.
일찍부터 묵주를 내 삶의 ‘지팡이’로 생각해 왔다. ‘묵주를 지팡이 삼고’라는 시를 지은 적도 있다.
지팡이는 사람의 걸음을 돕는 사물이다. 묵주기도는 언뜻 보면 성모 마리아님께 드리는 기도 같지만 사실은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므로, 묵주는 완벽한 지팡이가 될 수 있다.
하느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삶속에서 내가 직접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님의 어머니이시면서 인류의 어머니이신 분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은총인가.
이런 ‘생각의 꽃’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 또 가꾸며 살기에 매일 걷기운동을 할 때도, 또 어디를 가건
움직일 때마다 묵주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지요하 ( 막시모,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 글 일부 발췌하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