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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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갈라 3,1-5 루카 11,5-13

      하느님과 항구하게 머물기

      신앙생활을 도전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하느님 자체와 복음 자체에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곧 다른 어떤 특정한 장소나 사람으로 인하여 주어진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음을 바오로 사도는 이야기한다. 이것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별다른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겠지만,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가르침을 살아가면서 성령의 선물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머물면서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간혹 성령으로 시작하고서 육으로 마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음을 갈라티아 인들을 통해서 되돌아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하느님의 뜻에 어울리는, 하느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신비체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적인 요소나 다른 양념들이 포함되면 부패하게 된다는 것을, 분열된다는 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일, 하느님의 계획인 사랑의 공동체, 일치의 공동체, 평화의 공동체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친교를 뜻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조용하면서도 꾸준하게 요구하는 모습들을 생각해보자. 때로는 소란스럽게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 가운데 꼭 빠지지 않는 것은 진드기처럼 꼭 붙어서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저쪽 멀리서 외치는 방법으로는 그 무엇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필요한 것을 요구할 때는 그 자체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항구한 모습이 부정적인 모습에서는 잘 드러날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흔히 누군가를 탄핵하거나 자신들의 뜻을 무조건 관철시키기 위해서 데모를 하는 모습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무조건 촛불을 들거나, 인원을 소집하여 목소리를 높이거나 그 밖의 위협적인 모습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방법을 더욱 지혜롭게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부모님께 요청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한 삶에 관계된 것임을 깨닫고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항구한 기도의 삶임을 되새겨 본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성령의 선물, 참된 진리의 선물을 주실 분에게 더욱 나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세상의 모습은 새롭게 다듬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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