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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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54,1-10 루카 7,24-30

      우리에게도 기쁜 소식인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

      받아들이는 것과 거절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 때라도 나에게 다가오는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기도하면서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현상들에 빠지게 되면 그곳에서 그런 체험을 계속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서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누려야 할 목적지에서의 삶이라는 것을 희망하며 살아가는 것은 유익한 체험이 된다.

      세례자 요한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을 거부한 사람들은 예수님도 거부하게 된다. 그들은 무엇인가 꾸미고 장식하는데,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에 합당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회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한 것에 대한 뉘우침과 더불어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축복에 대한 희망으로 회개를 준비한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기쁜 소식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예수님? 그것은 근본적인 모범 답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늘 예수님이 친숙하고 가깝게 체험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에게 대단한 이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위기상황을 통하여 사랑과 관대함과 신앙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도와주는 소설과 영화에서처럼, 지금 내가 회개할 내용들을 점검하고 실천함으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신 기쁜 소식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세례자 요한은 이미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각자의 삶의 모습에서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는 것을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님이 오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 예언자들의 결정판인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는 기다리며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표징을 제자들을 통하여 확인하게 이끌어 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완성된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깨닫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증언해주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 곧 오시기로 약속 된 분은 우리에게 기쁨의 원천이 되어주시며, 구원하시는 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새롭거나 놀라운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내용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된다. 이로써 구원의 길을 준비하는 우리의 삶이 모양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기쁨의 소식을 준비하는 선포를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길을 닦는 오늘이 되어보자.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는 오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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