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대림 제2주간 목요일(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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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41,13-20 마태 11,11-15

       

      진정 하느님께 귀 기울이는가?

       

      기사로든 입으로든 기적에 대한 소문이 들려올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인지, 믿음이 강한 것인지, 호기심인지, 체험과 치유를 위해선지 교회에서 말리는 소리가 있어도 소용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 현실이다. 본당 신부의 부족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에게는 더 이상의 가르침이 필요 없는 것인지조차 구별하기 전에 미혹되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또한 그런 곳에 가보지 않았다면 신앙이 부족한 사람처럼 취급되어지는 것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 이곳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것을 어디에서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의 고백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주님을 시험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주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3) 이 보다 더 큰 위안과 힘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린 아기가 심하게 울게 될 때, 엄마의 손길이 충족되면, 혹은 자신이 보호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모든 것은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런 정상적인 삶이 바로 기적의 체험이며, 사랑의 고백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주님을 만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어려움과 비극과 고통과 걱정 속에 있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며 힘을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귀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번 대림시기를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 모든 것이 올바로 자리 잡히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의 사랑과 희생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게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제공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것은 예언의 확인이며 동시에 준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닫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를 주던 모습은 인간의 만족이 아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충만을 위한 것이었다. 즉,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의 모습(신성)을 닮은 사람의 재건(再建)을 시작하고 있다고 가톨릭 교리서가 말하고 있다.(CCC 720).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그 속에 안주하지 말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바빌론 유배 이후 말라키 예언자는 두 번째 엘리야를 이스라엘에 보내주신다는 하느님의 예언을 선포하였다.(말라 3,23). 오백년 후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보내셨는데,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으며, 그가 바로 다시 오기로 약속된 엘리야라고 선포하신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에게 주어진 사명의 완수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짐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묵상하며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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