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 되돌아볼 때,
파아란 하늘아래 무성한 나뭇잎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 들어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
우리가 오직 알 수 있는것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번은 죽는다는 사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그런것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섭섭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 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에게 따듯한 눈길을 보내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마주칠때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수 있도록
지금 이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 주고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것 같다.
나에겐,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고독한 계절이다.
그러나, 고독은 그 배경이 가을이라야 제격이다.
곽인근 다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