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와 렉시오 디비나
유럽의 수호성인 성 베네딕도(St. Benedictus, 480~540)는 수도자들에게 매일의 삶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성독)를 충실히 실천하기를 권고했다. 왜냐하면 렉시오 디비나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소명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수행이기 때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자 대부분이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었는데, 그들에 의해서 렉시오 디비나는 수도원 문화 안에서 훌륭하게 꽃필 수 있었다. 이제 베네딕도 성인이 규칙서에서 제시하는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성 베네딕도는 렉시오 디비나를 위한 고정된 시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한 예로 여름철에는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일 수 있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렉시오 디비나를 수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인은 수도자들이 하루에 최소한 2시간에서 4시간을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둘째, 성 베네딕도는 점심 식사 후에 수도자들로 하여금 오침(午寢)하거나 독서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만일 누가 혼자 독서를 계속하고자 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을 결코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독서가 묵독이 아니라 당연히 작게 소리 내어 읽고 듣는 수행이었기 때문이다. 베네딕도 성인의 생존 당시 수도자들의 성경 독서는 오늘날과 같은 묵독이 아니라, 작게 소리 내어 읽고 듣는 수행이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수행이 고요한 시간에 공동 침실이나 혹은 다른 공동 장소에서 행해졌다면, 그것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였을 것이다.
셋째,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렉시오 디비나 시간에 과연 무엇을 읽었을까? 베네딕도는 이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사실 베네딕도 규칙서에서는 성경 외에 다른 교부들의 작품들도 제시하고 있지만,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인 자료는 언제나 성경이었다. 성경은 인간 삶의 가장 올바른 규범임을 성인은 명시하였다.
넷째, 베네딕도 성인 당시의 수도자들에게도 하루에 적어도 2~4시간의 렉시오 디비나 수행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은 오랫동안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피정 지도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피정이 끝날 즈음에는 모두가 단순한 성독 수행에 대해서 매우 기뻐하면서 앞으로 꾸준히 하겠다고 다짐하며 떠나간다. 그러나 그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어, 성독 수행을 열심히 하고 있는가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못 하고 있다고 답한다. 렉시오 디비나는 이론이 아니라 수행이다. 수행은 남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열정을 갖고 매일 행해야 한다.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은 렉시오 디비나를 위해 항구한 열정과 성실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출처 : 인천교구주보)